조성진은 전문적인 연기자보다는 일반인에게 몸짓을 가르치는 일을 많이 한다. 초기에는 레크리에이션 강습이나 기업연수를 위한 예술체험의 부분으로 시작되었지만, 점차 인문적인 해석의 비중이 커지면서 최근에는 몸짓인문학이라는 이름으로 서울자유시민대학 다양한인문학강좌에 초청되고있다.

서울자유시민대학 강습, ‘낭송과 몸짓’ 사진: 김형효

잃어버린 우리 몸짓의 DNA

1995, 일본 나가노에서 열린 마임축제 아시아마임크리에이션에 참가했을 때였다. 한가로운 시간에 외국연기자들과 담소를 나누다가 다소 진지한 모드로 던진 말이 있다.

한국적인 마임을 하려고 한다.”

그때 캐나다 배우가 뭔 코미디 같은 소리냐하는 헛웃음을 지으며 바라보았다. 지금 마임이라 부르는 것은프랑스의 에티엔느 드크루가 제시한 방식을 말하는 것이니 한국적인 마임이 따로 있을 없다는 거다. 응수했다. 니들이 생각하는 마임이 일반화 되어 없이 마임이라는 말을 쓰지만 엄연히 우린 다른 몸짓을해왔노라고. 그리고 2 후에 한국 대표로 초청되어 내가 주장했던 한국적인 마임을 선보였다. 그때 캐나다 배우가 오지 않아 아쉬웠지만, 이스라엘에서 배우가 물었.

그런 마임을 어디서 배웠니?”

원래 우리가 해오던 거야.”

그는 정직하게도 부러워했다. 오천년 동안이라는 말은 하지않았다. 뭔가 뒤가 켕겼기 때문일 것이다. 오늘 한국의 몸짓은 예술의 영역이건 일상의 몸짓이건 황폐함이 이를데가 없었으므로. 국적이 없다고 하기보다는원형 씨알이 사라졌다. 아니, 몸짓 자체가 열등하고 속된 것이 되어버렸다.

동년배의 몸짓엔 우리의 근대사가 겹쳐보인다.

일제 강점기에 그들의 속을 드러내지 않는 눈치를 보는 듯한 몸짓이어령의 표현대로는 축소지향적인 몸짓을 내면화했다. 미군정을 거치며 서구문명 밑바닥에 갖추어진 천박한(brutal) 폭력성과 무조건 고급한 것으로 포장되어 들어온 오페라나 발레 등은 한국인 개개인의 몸짓에서 정체성을 사라지게 하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여기에 결정적인 한방은 국민이 산업전사가 되면서부터다. 근면한 인간의 몸은 노동에 최적화되어야 했다. 건들거려서는 되고, 게으른 것은 죄악이다. 춤추고 노래하고 까부는 것은 따로 직업이 있었다.

동년배의 몸짓엔 우리의 근대사가 겹쳐보인다.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가슴이 먹먹해온다. 우리민족의미학을 한마디로 자유분방이라 했던 어느 미술사가의 말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한국 사람은 표정이 없다느니, 놀줄을 모른다느니 하는 자조적인 말을 들으면, ‘한민족은 모래알 같다.’ 말을 했던 어떤 작자가 떠오른다. 우리 몸짓의 DNA 대한 이러한 왜곡과 폄훼를 두고보기가 어려웠다. 시대가 달라졌기 때문이다. “나랏말싸미 듕귁에 달아” 중국에서 들여온 문자가 우리말을 찍어눌러 소통이 막히자 세종께서 하신 말씀이다. 우리 몸짓을 두고는 같은 심정이다.

오늘날꼰대 아니냐의 차이는센스가 있나 없나이다. 센스는 머리를 굴려서 되는 아니다. 그것은 몸의 감각이다. 재미있는 , 매력적인 , 맛있는 것을 알아채는 감각이다. 먹고사는 것에 급급했던 세대에 있을 진저. 풍요를 일군 세대가 풍요의 세상을 누리지 못하고 천덕꾸러기가 되고 있다. 한편 새로운 풍요의 세대의 몸짓은 갈피가 없다. 6-70년대 산업전사들이 선데이서울이나 백과사전, 빨간책 등으로 셀프 성교육을 했듯이, 풍요의 세대는 그들의 몸짓이 근거할 바탕을 구할 수가 없는 것이다.

우리의 몸짓이 돌아온다.

다행히도 잃어버린 몸짓의 DNA 이곳저곳에서 어쩌면 외계에서 식물처럼 꽃을 피우고 있다. 아사다 마오가 흉내낼 없는 김연아의 우아함, 수다스럽지 않지만 동의가 되는 송강호의 연기, 화랑의 귀환이라고 밖에 말할 없는 BTS 몸짓, 판문점에서 보여준 남북 정상의 몸가짐, 표정. 집단적으로는 붉은악마의 질서정연한 광기, 은은한 분노로 대동세상을 펼쳐보인 촛불시위가 그것이다.

우리 몸짓은 무엇이 어떻게 다를까?

자유분방하고 우아한 우리몸짓을 되찾는 가운데 하나는 보존된 원형을 보고 배우는 것이다. 예술적인 몸짓 혹은 예능은 그런대로 전승되고 있지만, 그것만으로 한국인의 몸짓의 원형이나 원리를 알아내기는 어렵다. 그러니 많은 부분을 상상력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상상력을 도와주는 것이 인문학이다. 특히오늘의 일상 언어 속에 남아있는 몸짓과 관련된 말을 들여다보면 우리만의 몸짓의 원리가 숨어 있음을 있다.